아랍 왕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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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는 왕국이 총 13개 존재하며 왕족은 12개 가문이 존재함.

먼저 7개 토후국으로 구성된 UAE(United Arab Emirates)부터 보자
Emirate란 emir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의미임. 아라비아 반도는 농업적 가치가 낮아서 그곳의 토후(토착 호족)들은 외부의 방해 없이 자기들의 부족을 이끌고 살았는데 그 땅에서 석유가 나오면서 졸지에 산유국이 되었음.





두바이 왕족은 마크툼 가문
움알쿠와인 왕족은 무알라 가문
아부다비 왕족은 나히안 가문
아지만 왕족은 누아이미 가문
샤르자 왕족과 라스알카이마 왕족은 카시미 가문
푸자리아 왕족은 샤르키 가문



영국 축구팀 맨체스터시티의 오너로 유명한 '만수르'의 풀네임은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히안'이다. 즉, 그는 아부다비 왕족임.








UAE 이외의 왕국들도 살펴보자





바레인 왕족은 칼리파(Khalifa) 가문
쿠웨이트 왕족은 사바(Sabah) 가문
오만 왕족은 부사이드(Busaid) 가문
사우디 아라비아 왕족은 사우드(Saud) 가문
카타르 왕족은 타니(Thani) 가문



빈살만 왕세자의 이름은 모하메드 빈 살만 알 사우드이다.



그리고 중동에는 아라비아 반도 외에도 왕국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요르단이다.




요르단 왕족은 하시미(Hashimi) 가문이 다스린다
요르단의 정식 이름은 The Hashimite Kingdom of Jordan (요르단 하시미 왕국)이다.
지금 요르단 국왕은 압둘라2세.
ISIS 조진다고 직접 헬기 조종하던 그 박력넘치던 아재 다들 기억하노? 압둘라2세는 실제 공군 장교 출신임




하시미 가문과 사우드 가문은 악연이 있다.
하시미 가문은 본래 아라비아 반도의 하지즈(Hajiz) 토후국을 다스리던 호족이었다.
당시는 터키인들의 나라인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아랍인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독일제국과 가깝다 보니 독일과 경쟁 관계였던 영국은 투르크 제국의 배후를 뒤흔들기 위해 아랍인들을 지원했다
그 임무에 투입된 인물이 바로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알려진 영국군 정보장교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였다.




영국군의 지원을 받은 하지즈 토후국의 호족 후세인 빈 알리 알 하시미는 반란을 일으켜 투르크군을 아라비아 반도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영국 정부는 후세인 빈 알리의 독립 국가를 승인하기로 약속했지만 막상 아라비아 반도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투르크군을 몰아내자 마음이 바뀌었다.
영국은 프랑스와 멋대로 사이크스-피코 협약이라는 조약을 체결하면서 후세인 빈 알리의 통수를 쳤다.
사이크스 피코 협약은 팔레스타인에 선을 그어서 그 북쪽은 프랑스가, 남쪽은 영국이 다스린다는 내용이었다.
영국 정부는 로렌스에게조차 이 일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로렌스는 분노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로렌스는 그 후로도 계속 중동 지역을 돌며 첩보 활동을 했는데 그만 투르크군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그런데 그 투르크군 장교가 호모였다. 당시 터키에서 남색은 흔한 일이긴 했다.
심문 과정에서 투르크군 장교에게 애널을 강간당한 로렌스는 큰 충격을 받아 섹스 자체를 혐오하게 되었고 결국 여자도 남자도 사랑하지 못하는 무성애자가 되고 말았다.



후세인 빈 알리 또한 영국의 통수에 분노했지만 로렌스가 자기들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첩보 활동을 했고 그 과정에서 후장까지 뚫렸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로렌스를 여전히 신뢰했다.
특히 그의 둘째 아들 압둘라는 국제 정세를 읽을 줄 아는 인물이었고 아버지에게 영국을 저버릴 수는 없다고 설득했다.
영국의 지원이 없으면 투르크로부터 독립을 지키기 힘들다는 사실을 이해한 후세인 빈 알리는 결국 사이크스 피코 협약을 받아들인다.
대신 영국 정부는 후세인 빈 알리의 세 아들들을 모두 왕으로 만들어주었다.

장남 알리 알 하시미는 하지즈 토후국의 왕
차남 압둘라 알 하시미는 요르단의 왕
삼남 파이질 알 하시미는 이라크의 왕으로 만들어주었다.



중동의 대표적인 친영파였던 요르단의 압둘라1세



한편 영국과 합의해서 중동 북부 지역을 다스리게 된 프랑스는 수니파 무슬림들의 반발이 심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수 종파 출신 아랍인들을 우대하기 시작했다.
프랑스군에게 발탁되어 장교로 출세한 인물들 중 한명이 바로 지금의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의 아버지 하페즈이다.

하페즈는 투르크 제국 치하의 천민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성도 없었다.
프랑스군에 의해 장교로 발탁되면서 그는 자신의 성을 직접 만들었다. 아사드(Assad)는 사자라는 의미이다.
프랑스가 시리아에서 철수한 후에도 엘리트 장교로 출세길을 달리던 하페즈는 나중에 직접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의 정권을 수립했다.




하페즈는 30년간 시리아를 다스렸고 대통령직을 자기 아들 바샤르에게 넘겨주었다.
그래서 수니파 지식인들은 시리아 내전엔 프랑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후세인 빈 알리의 세 아들들은 서로 다른 운명을 겪었다.
왕국을 끝까지 지킨 사람은 둘째 아들 압둘라 뿐이었다.
파이잘의 이라크 왕국은 결국 장교들의 쿠데타로 몰락했고, 장교들은 자기들끼리 권력다툼을 벌였는데 최후에 살아남은 승리자가 바로 사담 후세인이다.
참고로 사담 후세인은 장교 출신이 아니라 암살단 출신이다.
정규 군사 훈련을 받지 못했다는 게 콤플렉스였던 사담 후세인은 수시로 군복 코스프레를 하면서 자신이 뛰어난 군인임을 어필하려 했다.



한편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알리 알 하시미가 다스리는 하지즈 토후국에 맞서는 반란이 일어났음.
이 반란을 이끈 인물이 바로 사우드 가문의 이븐 알 사우드임.


이븐 사우드는 아라비아 반도의 다른 호족들과 동맹 관계를 맺으면서 세력을 키웠고 결국 하지즈 토후국을 멸망시킴. 알리 알 하시미는 영국으로 망명함.
이븐 사우드는 '사우드 가문의 아라비아'라는 이름의 사우디 아라비아를 건국함.


이븐 사우드는 키 2m에 달하는 거구이며 검술에도 뛰어났다고 함.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가 소문난 정력가였다는 사실임.
그는 호족들과 동맹을 맺기 위해 정략결혼을 자주 했는데 정부인만 20명에 달했음. 첩은 더욱 많았고.
자신의 정력에 자신감이 남달랐던 이븐 사우드는 "나에게는 철의 검(sword of steel)과 살의 검(sword of flesh)이 있노라"하고 말했음.


그런데 이븐 사우드가 살의 검을 너무 많이 휘두른 탓에 그에게는 자식들이 매우 많았음.
왕자가 하도 많다 보니 사우디 아라비아는 지금도 왕자들끼리의 권력다툼이 매우 심함.
하지만 아무리 왕자가 많아도 사우디 왕족이면 이름 맨끝에 사우드가 들어가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