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실록] 배로 2년 8월 5일 을축 1번째 기사

 





박상언을 치하하다

배로가 전교(傳敎)하기를,

"포수(捕手) 박상언(朴相彦)이 팔장으로 나서 조다(朝茶) 양현종(梁玹種)을 통타하여 물러나게 하였으며 수비에 임하는 데 있어서도 부족함을 보이지 않고 성과를 거두었다. 연륜이 부족하나 점차 성장함이 실로 괄목(刮目)할 상대(相對)로구나."

하였다.

내실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궤세라(櫃世拏) 최재훈(崔在勳)에게 다섯 해 동안 54억 냥에 달하는 녹봉을 하사하였으나 최재훈이 야채(野菜)로 전락하였음이 실로 참담하였는데, 박상언은 때로 내실에서 최재훈보다 더욱 나은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으며 삼대(三擡) 사백팔십근(四百八十斤)에 달하는 근력을 선보여 피자(披蔗) 이도형(李到炯) 이후로 대를 잇지 못했던 거포 포수의 대를 이으리라는 세간의 평을 받기도 하였다.

이에 칙붕들 사이에서는 최재훈이 아닌 박상언을 중용하여 긴 시간 동안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논의가 끊이지 않았으나 배로는 최재훈을 신뢰하여 중용하였다.

사관은 논한다. 궤세라 최재훈은 본디 타격이 능숙치 못한 전반기에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야채의 행보를 드러내 왔으나, 하계(夏季)가 잦아들 즈음에 공수를 겸장한 면모를 되찾아 육류(肉類), 화우(和牛)라 칭송받곤 했다. 최재훈이 아직 지나치게 늙지 않았으니 금년에도 마찬가지로 하계가 잦아들면 화우라 칭송받던 시기의 행보를 보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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