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실록사초] 배로2년 8월 신묘



<한화본기사초 배로2년 8월 신묘(辛卯, 2022년 8월 6일)>

- 한화의 옛 호조판서 정민태가 한화 방어진을 질책했다. 특히 좌중랑장 범수는 등용된 해부터 바뀐 것이 없으니 이 지경이 되었다 평했다.

- 소박휘공(小博輝公) 영현이 형 정현의 허벅지를 저격하겠다 선언했다.

- 배로대왕이 이선봉장 팽야를 내보냈다. 이에 대항한 십곽(十郭)의 선봉장 형준이 또 괄수(恝守)에 성공했다.

- 노장 시환이 포를 쏘며 기선을 제압하였으나 역적 주석이 방어에 소홀한 틈을 타 십곽의 노익장 경수가 포를 쏘며 맞대응했다. 이에 전투의 흐름이 어지러워졌다.

- 작일 칙갈고마니를 당하였던 정대가 한화의 남장군 종수를 베며 수모를 되갚았다. 종수가 패전했다.

※ 사관은 논한다. 한화의 중견을 맡은 번장 덕구만이 백성들의 신임을 잃은 듯하다. 이에 덕구만에 대한 조정의 논쟁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를 반드시 기록하여 후세 사람들 역시 덕구만을 평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구보열전>
- 족지(奀鼠)가 거지(居地)의 땅 대부분을 빼앗으니 그 과는 거지의 선봉장 한돈 현희에게 있다.

- 십숙(十䎘)의 마구내 정이 2000번의 전투에 출전하였는데 그 경지에 이른 이들 중 가장 나이가 어렸다.

- 골대(滑大)에 역병이 퍼져 장수 다섯이 쓰러졌다. 중과부적으로 접대(接待)에 패했다.

<미주열전>
- 옛 십삭의 번장 객리(客悧)가 10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골대를 거쳐 간 례일리(禮一理)도 15홀두에 성공하니 미주 백성들이 구보를 다시 보게 되었다.

- 파두리수의 2대 한만두공 패타주가 건재함을 알렸다. 하성은 판관의 석연찮은 판단에 의해 애석하게도 공격에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