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실록] 거지국기 제2권



<거지국기> 제2권

- 거지(居地)의 초대 왕은 광환대왕 이광환이다. 높은 공덕으로 나라를 건국하여 천대에 빛이 열렸기에 태조(太祖)라 한다. 연호는 광환(廣煥)으로, 불꽃처럼 빛나는 공덕의 광채가 널리 퍼졌다 하여 광환이라 한다. 광환원년(2008) 동안 거지를 통치했다.

- 나라를 아꼈던 현대의 세도가 몽헌(夢憲)이 투신으로 자결하여 황망히 목숨을 잃었기에, 서서히 나라가 기울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세도가문인 현대 정씨 사람들은 구보(球普)보다는 축국(蹴鞠)을 더 선호하였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 이에 정씨들이 나라를 팔아먹으려 하였으나 워낙 대제국이었기에 새로운 세도가문이 쉽게 나서지는 못하였다. 나라는 결국 멸망하여 수원성에 장수들과 백성들이 덩그러니 남겨졌는데, 떠돌이 낭인 비리(費悧) 장석이 선대니얼(嬗廗泥臲) 패거리를 데리고 와 수원성의 유민들을 선동했다. 선대니얼은 물려받은 것이 비뚤어진 집밖에 없으니 진창에 빠진 듯 위태롭다는 뜻이다.

- 장석은 유민들을 이끌고 서울로 진격하여 마침내 목동현에 휘어로주(輝禦狫柱)를 세웠다. 궐련(卷煙) 상단 우리(憂理)와 손을 잡아 자금을 확보하였기에 우리 휘어로주라 불렸다. 장석이 태조 광환대왕을 첫 군주로 모셨으니 광환원년(2008)이 바로 휘어로주 역사의 시작이다.

- 세상 사람들이 장석을 부를 때 영리하게 재물을 소비하였기에 비리라고 하였는데, 이는 또한 씀씀이가 헤펐음을 우회적으로 풍자하는 말이기도 했다. 때문에 노익장들과의 녹봉 문제가 잦았다. 특히 현대에서 몇 년간 일선봉장 역할을 수행했던 정민태의 녹봉이 3억 냥이 넘었는데, 장석은 이를 기회로 삼아 민태의 관직을 삭탈하고 칠시(漆市)로 추방하니 다른 노익장들은 장석에게 함부로 녹봉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 동년 거지는 총 126번의 전투에서 50승 0무 76패라는 전적을 거두었다. 승률은 0.397으로 7번째 자리였다. 부위(副尉) 택근과 노익장 준호가 공격성공률 3할을 기록하며 분전했고, 유격대에서는 젊은 장수들인 게이(揭彛) 정호와 황청(遑淸) 재균이 활약하며 내년을 기대하게 했다. 선봉 중 확실한 활약을 한 것은 원삼과 일영밖에 없긴 했으나, 어찌 되었든 선봉 다섯이 모두 100시진을 막아내긴 했다. 다만 중군과 후군은 초토화되어 다 잡은 승리를 적에게 넘겨주었으므로, 급히 왜인 고진신오(高津臣吾)를 불러 후군장에 임명하였으나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 동년 7월 우리가 자금 지원을 중단했다. 몇 달 후 대왕이 물러났다.










<주해>
고진신오(高津臣吾) : 다카쓰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