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실록] 거지국기 제3권



<거지국기> 제3권

- 거지(居地)의 2대 왕은 골독대왕 김시진이다. 쫓겨났기에 묘호는 없으며 빙해군(俜海君)이라 칭한다. 연호는 빙신(俜兟)으로, 나라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끝내 한계에 부딪혀 비틀거렸다 하여 빙신이라 한다. 빙신원년(2009)부터 빙신4년(2012)까지 거지를 통치하다 쫓겨났다.

- 거지는 이 해 국가예산에 보탬이 될 후원자를 찾지 못하니, 수도 한성에서 착안하여 나라 이름을 서울 휘어로주라 하였다. 광환원년(2008) 말, 이장석이 제일선봉장 원삼의 이적을 칩성(蟄省)에 알선하였으나, 그 대가로 30억 냥을 받는 것은 시전(市廛)을 어지럽히는 일이라 하여 구보(球普)가 이를 막았다. 이에 원삼이 크게 상심하니, 전투에 출진해도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고 공격허용수가 평균 5회 중반에 이르렀다.

- 빙신원년(2009) 거지는 총 132번의 전투에서 60승 0무 72패라는 전적을 거두었다. 승률은 0.451으로 6번째 자리였다. 대회 중반까지만 해도 강력한 공격력으로 적을 박살내며 추계대회(秋季大會) 출전을 두고 경쟁하였지만, 후반기 방어진이 완전히 무너지며 미끄러져 버렸다.

- 부위(副尉) 택근이 포병 15부대와 기병 43부대를 이끌고 앞장서니 그 앞뒤로 번장 부름파(斧凜破)와 굴락(崛雒), 유격대장 게이(揭彛) 정호와 집사(執事) 지만이 각각 포병 20문씩을 이끌며 그를 도왔다. 삼루장으로 옮겨 간 황청(遑淸) 재균이 18차례 포를 쏘면서 이들을 지원하는 한편 기병 30기로 적을 돌파하니, 그 곁에 항상 이루장 일경이 역시 기병 30기를 갖추고 있었다. 노익장들도 분전하였는데, 지만의 활약은 물론이고 숭용의 공격성공률도 3할에 가까웠다. 동수 역시 자주 출전한 것은 아니지만 포수(砲手)로서 큰 힘을 보탰다.

- 그러나 작년의 선봉진은 완전히 해체되었다. 원삼이 무너진 것을 시작으로 수경선생(水鏡先生)과 마장군(馬將軍) 일영은 공격허용수가 6회가 훌쩍 넘으니 출진하지 않는 것이 나라에 도움이 되는 수준이었고, 황장군(黃將軍) 두성은 후군장으로 있다가 나중에야 선봉으로 임명되어 유일하게 허용수 3점(占) 근처를 기록했다. 오직 훗날 십억공(十億公)에 봉해지는 현승만이 170시진동안 외로이 적을 막으며 13번의 승리를 취했으나 그 외 방어진은 처참하여 차마 기록할 수 없다.







<주해>
추계대회(秋季大會) : 가을야구
부름파(斧凜破) : 늠름한 모습으로 도끼를 휘둘러 적을 깨뜨리다, 클리프 브룸바
굴락(崛雒) : 우뚝 솟고 독수리처럼 날렵하다, 덕 클락
게이(揭彛) : (전투를 대승하여) 술잔을 높이 들다, 강정호의 호
황청(遑淸) : 허둥거리고 머리가 맑다, 황재균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