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실록] 국인열전 안영명전

 



<국인열전 안영명전>


- 영명은 순흥 안씨로 충청좌도 천안목 사람이다. 호는 견견(犬犬) 자는 검옹요(劍擁邀)이다. 검옹요의 뜻은 칼같은 성격을 소유하여 맞다라는 의미로, 불미스러운 일을 당할 정도로 강직한 그의 성품을 비유하는 말이다.

- 북일서원과 대전학당에서 수학한 영명은 계미년(2003)에 한화국에 등용되어 인식3년(2007) 재활대왕의 친위대로서 90시진을 막아내며 크게 활약했다. 그러나 그 여파로 인식5년 선봉을 맡았으나 무려 34문의 대포에 얻어맞는 신기록을 세우며 대패했다.

- 인식 연간 영명은 상대 장수의 머리 쪽으로 화살을 쏘는 것을 즐겼는데, 영명의 담대함에 크게 감복한 윤휘곤수(昀諱困睡)의 노장 동수가 영명과의 일기토에서 뺨을 어루만진 일이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범두(犯斗)의 돌격대장 종욱을 저격하고는 그 표정이 한치의 흔들림도 없으며 오히려 태연하게 손을 펴 내보이니 검옹요라는 별칭의 유래다.

- 칠시(漆市)에 포로로 잡혔으나 곧 탈출하였다. 이후 끼리(奇利)2년(2014) 월광(月光) 규진, 정진옹과 함께 중군과 후군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이들이 구축한 진지를 안정진(安定陣)이라 한다.

- 혹사원년(2015) 폭군 세이군(勢離君)에 의해 일주일에 선봉장을 무려 세 차례나 맡으면서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 부상에서 회복된 용덕원년(2018) 중군에서 적을 빠르게 기습하여 제압하는 전법으로 힘을 보탰다. 고로나(苦老懦)라는 이름의 역병이 돌아 장수들이 쓰러지니 영명이 국가를 지키기를 자처했다.

- 강통(强通)3년(2021) 십곽(十郭)으로 적을 옮겼다. 예비대에서 소소한 역할을 하며 십곽의 천하 제패에 도움을 주었다. 강통4년 관직을 내려놓았다.



※ 사관은 논한다. 영명은 성품이 강직하고 한화에 대한 충심이 높았다. 비록 타국에 적을 둔 적도 있었지만 한화의 종실이나 다름없을지어다. 또한 선봉과 중군, 후군을 두루 맡아 쓰임새가 많았으며 노장이 되고도 꾸준히 노력하여 타의 모범이 되었다. 스스로의 능력이 부족함을 느꼈음에도 도움이 되려 종횡무진하였으니 어찌 누적된 전적을 폄훼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