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실록] 간신열전 송주호전



<간신열전 송주호전>

- 주호의 성은 송씨로 본관은 모른다. 한성부 종로 사람이며, 호는 암(癌), 자는 식물(植物)이다. 보통 성 대신 호를 따 암주호라 한다.

- 한성의 중앙서원에서 수학했으나 과거에 합격하지 못했다. 그러나 각동3년(2007) 칩성(蟄省)이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별시를 열었는데 주호가 이루장으로 급제하며 등용되었다.

- 각동 연간 출전하지 못했고 살구황제가 즉위하며 칩성 조정은 주호에게 사직을 권고했으나 듣지 않았다. 이에 칩성은 주호를 폐서인하고 추방하니 곧 천민 생활의 시작이다.

- 고양현에 도읍을 둔 원다수(怨多數)에 노리대왕 성근이 재위하고 있었는데, 갈 곳을 잃은 주호를 등용했다. 원다수에서의 그 노력을 높이 산 서산부윤 악동(齷動) 이정훈이 한화 조정에 주호를 추천했다. 끼리 연간 주호는 서산부윤 정훈 아래서 꾸준히 훈련했다.

- 혹사원년(2015) 노리대왕이 한화에 즉위하니 주호는 크게 기뻐하였다. 노리대왕 역시 주호를 어여삐 여겨 중용했다. 그러나 10번 전투에 나가면 2번을 겨우 이기니 그 개탄스러운 모습을 본 한화 백성들은 실의에 빠지고 주호를 식물원장(植物園長)이라 조롱하였다.

- 동년 5월 임인(26일), 한화가 2번의 기회를 남긴 채 칠시(漆市)의 일루, 이루, 삼루성을 모두 취하였다. 이에 노리대왕은 주호를 일루성으로 보내 대주자(代主者)로 임명해 지키도록 했다. 그러나 주호가 마치 귀신에 이끌린 듯 성을 비우니 칠시의 선봉장 임준혁은 곧바로 견제(牽制)하여 일루를 탈환했다. 뒤이어 칠시는 거동이 불편한 별명공(別名公) 태균과의 전투를 피하고 계란적(鷄卵賊) 용관의 목을 베며 승전하였다. 이에 한화 백성들은 일제히 봉기하여 역적 송모를 죽이라 하였다.

- 저잣거리에 모인 백성들은 송모를 정원에 식물만 심는 원다수천민(園多樹賤民)이라 비난했고 처형하라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 유생들 역시 송모 때문에 장어공(長魚公) 운호, 달배공(達配公) 수광, 병졸 준혁이 전투 경험을 쌓지 못한다며 파직하라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노리대왕은 이를 무시하고 군역을 마친 젊은 군사 수광과 준혁을 내쳤으며 이듬해까지 송모를 기용하였다.

- 혹사3년 폭군 세이군(勢離君)이 물러나며 역적 송모 역시 체포되어 서산으로 압송됐다. 세이군을 쫓아낸 재상 박종훈이 이듬해 송모를 처형했다.



※ 사관은 논한다. 역적 송모는 장수로서의 자질이 매우 부족하였는데 세이군의 사람 보는 안목이 낡았기에 운이 좋게 한화에서 중용되었다. 이에 젊은 장졸들이 한화를 떠나거나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이처럼 나라를 어지럽힌 천민 송모가 처형됨은 당연한 수순이다.